언어, 자유, 평등에 대한 반역의 기록

언어는 사고의 틀이며, 자유와 평등은 허상일 수 있다. 정해진 기준에 의문을 던지고 자신의 기준을 만드는 철학적 성찰의 기록.


언어는 누가 기준을 정하는가

우리는 어떤 절대적 기준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처럼 언어를 받아들이고, 그 말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반복하여 사용하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나는 이 구조가 무척이나 부조리하다 느낀다.


언어는 사고의 틀이다

언어는 곧 사유의 그릇이다.
그 그릇의 모양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사고한다 착각할 뿐이다.
사유는 정해진 틀을 벗어날 수 없고, 감정조차 외부에서 주입된 언어의 조합 속에서 길들여진다. 같은 표현, 같은 표정, 같은 생각…
우리 모두 독립된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언어는 존재를 규정한다

언어란 단순한 표현수단이 아닌 사고와 존재 그 자체를 규정하는 틀이다.
다양한 어휘를 사용할수록 감정은 풍부해지고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어휘와 단어, 그 틀을 부수고 자신의 언어로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길 바란다.
모두가 반항해야 한다.


시대에 따라 바뀌는 가치들

아름다움, 선과 악, 도덕, 법, 규율의 상대성

전에 말했듯,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다름은 곧 이상함이라 치부되며 그저 따르기만 하는 다수에 의해 배척받았다.
선과 악, 도덕, 법, 규율과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했고, 문화에 따라 변형되었으며 권력에 의해 조작되고 이용당해 왔다.


종교와 절대선에 대한 질문

하나의 예시로서 나는 묻겠다. 종교는 언제나 선했는가?
정말 종교가 절대선의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가?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믿지 않는 자를 이교도라 낙인찍으며 그들의 권리와 생명을 수탈해온 역사 앞에서 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자유와 창의성은 진짜인가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

자유와 창의성을 진정 숭상한다면, 우리는 거리낌 없이 말하고 예술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기호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타인의 기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통제된 자유, 허가된 창의성

우리의 창의성은 허용된 프레임 안에 갇혀 있으며,
그 혁신은 늘 짜인 무대 위 허가된 각본 안에서만 작동한다.
목줄을 찬 채, 규범 너머의 세상을 외면하며.


평등은 정의인가?

세상은 언제나 부조리했다.
평등은 존재한 적 없고, 존재할 수조차 없는 개념이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고, 같은 교육을 받아도 사고의 결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절대적 평등이란 환상

절대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고 환경을 통제해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불평등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며, 인간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무대다.


법과 도덕은 누가 정하는가

대마와 담배의 기준은 과학이 아닌 권력이다

대마는 위험한가? 그렇다면 담배는?
대마는 담배보다 중독성도, 발암률도 낮다.
그러나 사회는 대마를 악으로, 담배를 문화로 받아들인다.
이 차이는 과학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형성된 감각이다.


진짜 자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묻지 않는가

사랑, 책임, 자유, 부유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자유롭지 못하다 느낀다면, 그 자유는 누구에게 빼앗긴 것인가?
어쩌면 자유란, 우리가 스스로 내려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기준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사회적 약속이나 법, 도덕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들이 족쇄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끊어낼 것이다.
진짜 삶은 타인의 시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한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자신의 기준을 만들라고. 그 기준이 치열하고 진실해야 한다고.